책과 영화

미국역사 #4

로드매니저 2021. 4. 30. 08:46

지난 #3에서 이야기 했던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어떻게 정착했는지 혹은 아메리칸 원주민을 어떻게 약탈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유럽역사를 기준으로 보면 그들은 정복자 (Consquistadores; 콩키스타도르) 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만, 반대로 원주민들은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초기 정복자들에게 유럽의 왕이나 여왕들은 20%의 수익을 납부한다는 조건하게 정복자들의 약탈을 인정하거나 장려하였습니다.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 (Hernan Cortes)는 약 500명의 군인과 함께 말과 대포를 가지고 멕시코에 도착했습니다.  멕시코에 도착한 후, 운명적이게도 아즈텍 문명을 극도로 싫어해오던 원주민 여성인 말리친 (Malintzin)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를 추정해보면 호전적이고 인신공양이라는 풍습이 있던 아즈텍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부족이 적었던 걸로 보이고, 비사에 의해 알려진대로 귀족에서 노예신분으로 추락한 말리친은 알 수 없는 복수심에 의해서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코르테스에 협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리친은 원주민으로서 아즈텍과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들과 원주민들의 풍습 등의 고급 정보를 코르테즈에게 알려 주었고, 또한 말리친은 귀족교육을 받았으며 뛰어난 언어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원주민과 코르테스의 통역역할도 담당하였습니다.

Jose Clemente Orozco 작품, 말린친과 코르테즈

아즈텍의 목테수마 (Moctezuma) 황제는 금속으로 된 무기를 무장을 하고 말을 타고 나타난 코르테스와 스페인 군인들을 보고 이들이 신이 보낸 사자라고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테노치티틀란 (Tenochititlan) 으로 초대해서 많은 보물을 제공하고 달래서 그들이 속히 떠나길 바랬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아즈텍 사람들은 언젠가 흰수염을 지난 백인 신(神)인 퀘찰코아틀 (Quetzalcoatl) 이 나타나 그들을 다스릴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때마침 수염을 지난 코르테스가 말을 타고 나타났으니, 황체가 경계하고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테노치틀란에 도착한 코르테스 일행은 많은 보물을 받고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아즈텍 제국에 많은 양의 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황제인 목텍수마를 인질로 잡고 더 많은 금을 요구하게 됩니다.  아즈텍인들은 목테수마에 대해서 호의적이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의 황제가 인질로 잡혀 있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코르테스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1520년 6월 30일 수도 테노치티들란의 시민들은 코로테스를 포함한 스페인 군인들을 몰아내게 되고, 이 과정에서 그들의 황제인 목테수마는 사망하게 됩니다.  코르테스도 세 번이나 포로로 잡힐 뻔한 위기를 넘기고 겨우 목숨만 건지고 후퇴하게 되는데, 이것이 유명한 '라 노체 트리스테 (La Noche Triste 슬픔의 밤) 전투'입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아메리카 원주민과 싸운 최대의 전투이면서 아즈텍제국이 유럽인 (스페인)을 상대로 이룬 최대의 승리를 거둔 전투이기도 합니다. 이 전투에서 원주민들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코르테스 일행의 숫자보다는 압도적으로 원주민들의 숫자가 많았고, 또한 처음 그들 (흰수염을 지난 백인과 영험스러 말)을 봤을 때의 경외심은 사라졌고, 오히려 그들로 부터 노획한 총기를 다룰 수 있게 되고, 또한 기마기술도 익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 전투가 왜 '슬픔의 밤 전투'라고 불리느냐면 이 전투에 원정대의 일원으로써 참여한 역사가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가 붙여준 것입니다.  즉, 스페인의 시선에서는 처음으로 원주민에게 철저하게 패배한 전투였기에 '슬픈' 전투였을 테고, 반대로 원주민들에게는 '승전'의 전투가 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보입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이 전투를 특정해서 칭하는 명칭은 별도로 없고 여전히 스페인식 표기를 따르고 있습니다.

코르테스는 겨우 아즈텍에서 도망을 갔지만, 1521년 5월에 다시 돌아 와서는 철저하게 아즈텍을 무너뜨리고 제국을 파괴한 뒤 멕시코시티를 세우게 됩니다.  코르테스가 아즈텍에서 정복자로서 지위를 누리고 있음을 알게 된 그의 먼 친적인 프란시스코 피사로 (Francisco Pizarro)도 비슷한 야망을 꿈꾸게 됩니다.  

피사로는 코르테스보다 더 적은 200명의 군인을 이끌고 남아메리카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때 잉카제국의 황제인 아타우알파 (Atahualpa)을 접견하게 되는데, 여러가지 설은 있지만, 스페인군대가 가져온 성경책을 던지며 호전적인 자세를 취하자 소수의 병력으로 두려움과 긴장상태에 있던 스페인군들은 즉각 황제를 공격하고 그를 생포하게 됩니다.  정규적인 전투라기 보다는 서로 처음 보는 입장에서 우발적인 소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는 '태양신의 대리인'이자 황제인 자신이 생포됨으로 인해 잉카제국은 마땅한 대응조차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단계를 밟게 됩니다.

아타우알파는 생포된 뒤, 목숨을 보장해주면 자기가 지금 갇혀 있는 방을 가득 채울 정도의 금과 은을 주겠노라고 제안을 하게 됩니다.  황제는 실제로 그 정도의 금과 은을 모았으며, 피사로는 기병에겐 1인당 은 82kg과 금 41kg을 배급하고 보병에겐 그 절반을 나누어 줬습니다.  피사로는 기병의 7배를 받았다고 하고, 요즘 금 1kg 가격이 대강 7천만원 정도 한다고 하니 계산해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정복자들에게 원정을 승인한 스페인 국왕은 얼마를 받았느냐 하면 금 1톤과 은2톤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 이렇게 많은 금과 은을 제공하고 약속대로 아타우알파 황제가 석방되었느냐 하면, 안타깝게도 반대로 처형당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이후 피사로는 쿠스코 (Cuzco)로 진군하여 2,000마일이나 되는 긴 영토를 지닌 현재의 페루를 점령하게 됩니다.

피사로가 유럽으로 가져간 막대한 양의 금과 은으로 인해서, 유럽국가들은 앞다퉈 대서양을 건너기 시작하였고, 스스히 유럽이 제국주의 국가로 탈바꿈하는 기초를 제공하게 됩니다.  암흑의 중세를 갈무리하고 식민지 다툼을 벌이는 근대 제국주의 시대의 문을 열게 된 사람이 피사로라고 해도 지나친 평가는 아니라고 봅니다.

신대륙을 대표하던 거대한 제국인 아즈텍과 잉카 문명이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진 것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학설이 있습니다만, 대체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초기에 정복자들의 외모와 기병, 금속 무기 등은 그들을 신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둘째, 기병술 등을 이용한 기습공격에 능했고, 피지배 원주민 계층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천연두라는 질병을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가지고 들어 오면서, 이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었는 원주민들이 대량 사망하게 되었다는 것도 그 이유 입니다.  실제로 아즈텍제국이 슬픔의 밤 전투에서 생포한 정복자들의 흑인 노예는 천연두를 앓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목이 미국역사임에도 이번 장은 대부분 중부아메리카 (지금의 멕시코 및 남아메리카)를 주로 다루었습니다만, 유럽의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기 이전에는 아즈텍과 잉카문명이 신대륙에서 유일한 제국형태 혹은 문명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고, 당시 가장 큰 세력이기도 했기에 이 지역을 집중적으로 다루게 되었습니다.  아직 미국인 북아메리카는 잠에서 막 깨어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점점 잠에서 깨어난 미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옮겨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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