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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역사 #3

로드매니저 2021. 4. 17. 14:23

북미지역이나 남미지역이 아직 고대문명처럼 느리게 발달하고 있을 때에, 유럽은 이미 대항해시대에 접어 들었고 식민지쟁탈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대항해시대는 역사적으로도 최초로 구대륙인 유럽과 신대륙인 미국이 교류를 하게되었다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고,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종교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3에서는 아메리카대륙이 긴 잠을 자고 있을 때에 그들을 깨운 나라가 누구인지 살펴보는 것을 중심으로 나열하겠습니다.

대항해시대가 열리기 전엔 유럽에서는 향신료나 비단 등이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당연한 이유는, 비단이나 향신료는 유럽대륙 아래에 붙은 북아프리카 상인이나 혹은 옆의 아랍 상인을 통해서 구입해야 하는데, 이들도 이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는 실크로드를 통해서 먼 길을 돌아 운송을 해서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대항해 시대를 열 수 있게 한 것은 이러한 인도나 중국의 비단과 향신료에 대한 강한 욕구도 있었지만, 원거리 항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지도기술과 나침반같은 결정적인 기술발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대항해시대의 문을 연 국가는 유럽의 변방 포르투갈입니다.  척박한 토지에 농업이 제대로 발전할 수 없었지만, 지정학적으로 대양을 마주보고 있었던 포르투갈은 일찌기 항해학교를 설립해서 적은 인원으로 조작이 가능한 캐러벨 (caravel)을 개발하여 아프리카대륙 서쪽해안까지 항해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 항로를 통해서 아프리카에서는 금이나 노예를 거래할 수 있었지만, 포르투갈이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은 인도상인들과의 직접 교역이었기에 아프리카대륙을 지나서 인도까지 가는 항로를 개척하고자 했습니다.

 

초기 캐러벨

 

이 시기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바스코 다 가마라는 탐험가입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포르투갈에 있어서는 영웅일 수 있지만, 반대쪽 시각에서는 해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바스코 다 가마는 아프리카의 끝단인 희망봉을 지나서 1498년 5월에 드디어 이도에 도착하게 됩니다.  앞에서 밝혔지만 '교역'이라는 것이 교역당사자간에 서로 필요한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포르투갈이 거래하려고 가져 갔던 물건들이 외투나 모자 혹은 설탕이었는데, 기원전부터 시작된 인도의 방직 및 염색기술에 비하면 조잡한 것들에 불과했기에 애초에 '교역' 자체가 불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향신료와의 거래는 힘들었기에 포르투갈이 택한 정책은 무력을 통한 약탈이었지, 교역은 아니었습니다.  

어찌되었던 유럽은 아시아로의 바닷길을 개척하였다는데 역사적인 의의가 있겠습니다.  인도로 향하는 길에 발견한 것이 결국 아메리카 대륙이니까요.

포르투갈이 희망봉을 발견하고 인도항로를 개척하면서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것을 지켜보던 스페인도 이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때마침 크리트퍼 콜럼버스도 새로운 세계로의 탐험에 목말라 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태생으로서 일찌기 포르투갈에서 교육을 받았던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이해하였고, 포르투갈이 향했던 동쪽항로 대신에 서쪽항로를 개척해서 항해한다면 반드시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나름대로 당시에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지만, 지구의 둘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의해 영국이나 포르투갈은 그의 항해에 대한 투자를 거절하였지만, 스페인의 이스벨라 여왕은 거의 사재를 털어서 까지 그를 후원하였습니다.  

1492년 년 8월 3일 스페인을 출발한 탐험대는 2개월 후인 10월 12일 현재의 바하마에 도착하게 됩니다.  2개월 여 동안의 항해동안 선원들은 탐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계속 스페인으로 돌아가자고 요구하였고, 콜럼버스는 이중의 항해일지를 작성하여 선원들에게는 짧게 항해한 일지를 보여주면서 '배가 늦게 움직여서 실제 얼마 안움직였다'는 등의 말로 항해를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콜럼버스는 금을 찾아서 총 3회에 걸쳐 아메리카대륙을 탐험하였지만 원하는 금은 찾을 수 없었고, 대신에 지금의 하이티, 쿠바, 자메이카 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에 원주민들은 이미 터전을 잡고 있었고, 유럽에서 온 콜럼버스 일행에 호의를 베풀었습니다만, 반대로 원주민들은 그들의 노예가 되거나 잔혹한 학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콜롬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이 인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주미들을 당연히 인도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 원주민 (American Native)들이 인디안 (Indian)이라고 불려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새로 발견된 대륙 (지극히 유럽인의 시각)에 대해서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갈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황 알렉산더6세에게 찾아가서 합의점을 도출하게 되는데 이것이 1493년 결정된 경계선 (Line of Demarcation)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왼쪽의 아메리카대륙에 대한 소유권은 스페인이 가져가고 오른쪽은 포르투갈이 가지는 것으로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미 동쪽의 대부분은 포르투갈이 차지한 상태이기 때문이 스페인만 이득을 보는 것 같았고, 또한 지금의 브라질 땅은 '페드로 알바레스 카르발' 포르투갈 사람이 발견한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위의 지도에서 보면 1493년의 경계선에는 대부분의 아메리카 대륙이 스페인의 소유가 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다음해, 1494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기존의 경계선을 서쪽으로 1,175마일 옮기는 것에 합의하는 '토르데실라스 협정 (Treaty of Tordesillas)'을 맺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도 남미의 대부분 국가들이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예외로 브라질과 몇몇 대서양연안 국가들은 포트투갈어를 공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3을 마무리 하면서 콜럼버스교환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인류 역사상 거의 1만년 가까이 유럽대륙과 아메리카 대륙 사이에는 어떠한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동식물간에 교류가 없이 각각의 대륙에 살아 왔습니다만, 대항해 시대 이후에 아메리카에서 자생하던 감자, 옥수수, 코코아, 담배 등이 유럽으로 건너 가게 되었고, 반대로 유럽의 돼지, 소, 말등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겨 오게 됩니다.  이러한 동식물의 교환은 인류에게 있어서 식생활에 변화를 주었고 신대륙으로 들여 온 말이나 소에 의해서 농경생활에도 변화를 주게 됩니다.  인류에게도 교환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옮긴 천연두와 독감을 들 수 있습니다.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오기 전에는 이러한 질병 혹은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들과의 접촉 후 100여 년 동안 거의 2천만 명 정도 사망하게 됩니다.  이러한 동식물의 대륙간 이동, 질병과 바이러스의 이동 등을 일컬어 콜럼버스 교환 (Columbian Exchange)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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