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혹은 3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휴가.
인간을 3만피트 상공으로 끌어 올렸다가 다시 지상으로 끌어 내리는 비행기라는 요물은 편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의 오감을 망각시키기도 한다. 땅으로 내려오면, 일단 귀가 멍해지면서 청력이 떨어지고 인지장애도 동반하는 듯 하다.
입국심사관이 묻는 말에, 마치 청각장애가 생긴 것 처럼 한쪽 귀를 심사관 코밑에 들이밀게 된다. 인천을 출발해서 10시간만에 나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다.
간단한 입국심사 후, 수화물로 체크인 했던 가방 두 개를 픽업해서는 후다닥 유나이티드 국내선에 위탁한다. 다시 몸은 홀가분 상태.
하지만 코로나 덕분에 오스틴행 비행스케줄에 변동이 있어, 무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7시간 기다려야 한다. ㅠㅠ
미리 통지받았기에 넷플릭스 드라마를 빵빵하게 다운로드 받아 왔고, 혹시나 싶어 태백산맥 소설책도 한세트 통째 가방에 쟁여 왔다.
공항이 그나마 작아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영화를 보다가 걷다가 먹다가 시간과의 사투를 벌였다. 땡큐, 우영우 & 우리들의 불루스.
와이파이가 인천공항만큼 빵빵하게 터지는 것도 샌프란시코 공항의 매력이다. 음식들이 대체로 나트륨 덩어리이지만, 조금만 걸어가면 구석에 버거킹도 있어서 7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드디어 7시간 후, 정확하게 오스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기억하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잠에 골아 떨어졌기에 비행과정은 기억에 없다. 아마 편안한 비행이었것이라 짐작만 한채.
잠결에 땅으로 빨려 들어 가는 느낌에 눈을 살포시, 주위를 살펴보니 착륙을 준비하는 듯 했다. 그리고, 기억이 났다. 한국에서 미국핸드폰 유심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가로 세로 1센티 밖에 안되는 유심. 하지만 후폭풍은 스펙타클~~
오스틴 공항에 내려서, 짐을 찾으러 가는 길에 혹시 와이파이가 되는지 살펴 봤지만 정말 머리카락 보다 가는 한 줄기의 신호만이 간간히 잡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우버를 콜하려면 데이타연결 혹은 와이파이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유심도 없도 와이파이도 오락가락 하는 상태. 해서 우버를 부를 수 없다.
28인치, 24인치, 20인치... 가방 3개를 들고 와이파이 신호를 찾가 공항내부를 미친듯이 돌아 다니다가 겨우 와이파이 겟.
우버를 불렀다. 2분내에 온단다. 노랑색 표지판에서 타면 된다고 한다.
공항밖으로 후다닥 나왔다. 2분 컷. 노랑 표지판. 노랑표지판이 공항밖에서 안보인다. 2분에서 1분 컷으로. 공항밖은 터지라는 와이파이는 안터지고 내 속이 터졌다. 1분 컷. 노랑 표지판이 없다.
다시 공항안으로 컴백. 5분이 지났다.
다시 와이파이 신호가 잡힌다. 우버 기사가 기다리다 그냥 간다는 메세지와 함께 노쇼 페널티 5달러 50센트 청구서도 함께.
얄궂게 다시 와이파이 사라짐.
또 공항내부로 거의 뛰다시피 돌아 댕기다가 겨우 와이파이 겟. 우버 다시 콜. 2분 컷.
공항밖으로 나가서 안내판을 살펴 보니, 택시나 우버는 공항앞에서 못타고 반드시 맞은편 주차장 2층으로 가야 한다고 나온다 (사실 아렇게 자세하게 안나옴 gr).... 2분 컷
4차선 도로를 가로 질러, 주차장으로 뛰어서 다시 엘리베이터 타고 2층으로. 그리고 주차장을 나와서 도로를 따라서 마구 뛰어 감.
2분 컷, 그리고 가방 몇 개? 3개
옆에서 같이 뛰던 친구가 불쌍한 중생을 위해 가방 하나를 들어 준다. 3분 지났다.
택시들이 즐비한 곳에서 렉서스를 찾는다. 한 아줌마가 기다리다가 천천히 차를 몰아서 나오는 것이 보인다.. 내 차... 기다리다가 막 떠나려는 차를 겨우 잡았다. 5분은 넘게 기다린 듯. 땡큐! 유심이 없으니 팁도 당장은 못 챙켜 줬다 (물론 오늘 아침에 앱에 들어가서 따로 팁을 보냈다)
호텔에 도착했다. 3주간 내 차는 잘 있었는지 깨끗해 보인다. 자리에 앉은 순간, 집에 다 온 느낌. 시동도 시원하게, 에어컨도 시원하게~~
잠깐. 유심이 없다. 즉, 네비가 없다. 아.......
새벽1시에 차에 앉아 머릿속으로 길을 생각해 본다. 이 앞 골목길에서 우회전해서 다시 유턴, 그리고 좌해전, 그리고 유턴, 우회전...... ㅠㅠㅜㅜㅜ 그나마 쉬운 길이어서 별 무리는 없었다. 룰루랄라 35번 고속도로 70마일.....
집앞에 다가 온다. 그런데 유심이 없다. 아파트 출입문은 앱을 구동시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유심이 없다. 앱을 구동 못시킨다.
차에서 자야 하나? 아파트 비상 비번도 모르는데.. 유심도 없고.
저기 바로 앞에 후미들이 켜진 차가 보인다. 막 정문을 통과하는. 아파트 앞에서 60마일~ 저 차를 따라 들어가면 되겠다 싶다. 싶었다.
야속하게 그 차를 통과시키고 아파트 정문은 다시 끼리릭 소리를 내며 잠김. 차를 단지내의 헬스장에 가까이 붙여 본다. 헬스장에 공유 와이파이!!!!!
ㅋㅋ 신호가 잡힌다......앱을 열어서 아파트 정문을 활짝!!!!
집에 도착했다.
가로세로1센티 유심이 없이 살아 간다는 것. 요즘은 불가능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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